MK 이야기

재입국하는 청년 MK를 위한 교회에서의 환대(歡待)

곰목사 2022. 6. 6. 15:53

김성진 선교사(MK NEST)

 

I.들어가는 말

 

 환대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적 가치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환대를 받고, 환대를 베풀기를 좋아한다. 선교사 자녀들도 예외는 아니다. ‘환대’(Hospitality)후한 대접을 말한다. 사전에 따르면 동사로 사용될 때 따뜻한 환영’(warm welcome)의 의미를 갖는다. 국어사전은 환대를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국립 국어 표준 대사전)으로 정의했다. 이 글에서 Hospitality와 환대, 손 대접이라는 용어를 혼용하여 사용하는 이유는 다른 저자들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성도(聖徒)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12:13),“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13:2),“손 대접을 잘 하는 이어야 한다”(딤 전 3:2) 등에 쓰이는 손대접도 같은 의미임을 먼저 밝히면서 이글에서 필자는 환대라는 용어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동안 많은 선교사 자녀들(Missionary Kid:이하 MK)을 만나면서 느꼈던 필요가 있었다. MK들을 보며 느꼈던 필요와 환대에 대한 이론적인 것과 성경에서 말하는 것에 비추어 이해하며, 3명의 MK들의 실제 사례를 통해 그들의 필요를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국내로 재진입하는 청년 MK들 맞이하면서 성경의 말씀을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적인 실천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II. 국내로 재입국하는 청년 MK 들이 경험하는 변화

 

국내로 재입국하는 청년 MK들은 삶의 모든 면에서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첫 번째는 가족 구조와 주거 환경의 변화와 거기에서 오는 정서적 안정감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점점 국내로 대학과 직장을 정하고 재입국하는 MK들이 늘어나고 있다. 해외로 나가는 MK들은 거의가 가장 먼저 기숙사를 선택하는 것에 비해 국내로 재입국하는 MK들은 가장 먼저 변화를 맞는 것이 바로 거처의 문제다. 친척 집에 1,2개월이 아닌 1-4년을 머무는 것은 서로에게 몹시 부담이 되는 일이다. 기숙사에 머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지만 요즘 많은 대학들이 기숙사를 새로 짓거나 위탁운영을 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학생들과 MK들에게 선택하기에 부담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MK들에게 몇몇 호스텔과 선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선교관의 경우 자녀들만 있는 것은 어렵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사의 경우는 필수로 요구되는 조건들이 있어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전세나 월세의 집을 찾는 것에는 재정적 부담이 크고 여학생의 경우 원룸을 얻기에 안전의 문제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주거의 변화와 함께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는데 온 가족이 함께 방학을 이용해 잠시 국내에 머무는 것과는 다르게 이제부터는 부모님과 형제, 자매로부터 떨어져 시간, 공간, 공부, 생활 등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완전히 독립된 성인으로의 삶을 살게 된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MK들도 돔 페어런츠의 밀접한 관리 아래 있던 것과 달리 성인으로 홀로 서서 가족과 완전히 분리되는 상황 가운데 놓이게 되며, 가족과 함께 지냈다 하더라도 기본 생활 습관, 심리, 정서적으로 독립의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상처를 안은 채 홀로 남겨질 경우와 이 상황 가운데 감정적으로 위안이 필요한 경우라면 정서적으로 위험에 놓일 수 있다.위안이 부족한 상태에서 위안을 받지 못하고 쌓아두어 응어리진 슬픔의 표현과 그에 반응하는 방어적인 것으로 분노, 우울, 위축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Pollck & Reken 2005, 219)

 

 두 번째는 관계의 변화가 있다. 학교. 언어. 친구 등 모든 관계에서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국내에 재입국하여 학교를 가는 청년 MK들은 먼저 언어의 문제에 부딪힌다. 선교지에서 모국어로 학습을 계속 이어나가지 않았다며 그들이 국내 대학에서 학업을 하는데 상당한 부담이 된다. 읽기, 듣기, 말하기는 자연스러워도 쓰기와 학습 관련 용어들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좋은 친구와 선배들의 도움을 받기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려면 많은 인내와 노력이 따라야 한다. MK들은 주위 사람들과 친근한 관계를 맺는 일은 쉽지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만한 친구를 사귀고 이해와 도움을 얻는 깊은 관계까지 맺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잦은 이동과 이별의 경험 때문에 쉽게 상처를 입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다. 낯선 상황을 자주 경험하게 되므로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스스로 방어막을 치는 경향이 있어 잘난 척하고, 예의없는 인상을 주어 오해받기 쉽다.

 

 세 번째는 교회. 문화. 가치관의 변화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자녀만 한국에 남겨두며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어쩌면 교회에 관한 부분일 수 있을 것이다. 성인의 경우도 교회를 옮기는 것은 상당한 어려움인데 MK들의 경우 모든 것이 변하는 가운데 교회의 변화는 크게 이미 파송교회나 학사에 따라 선택할 수 없이 의무 출석해야 하는 경우와 교회를 정하지 않아서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선택할 수 없이 예배나 봉사가 정해져서 상당한 부담이 되며 후자의 경우 너무 선택지가 많아서 자신에게 맞는 교회를 찾다가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연약한 믿음 위에 있을 때, 이단의 유혹에 빠지기 쉽고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데 교회 안에서 정착하지 못하면 점차 멀리하다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주위에 좋은 믿음의 공동체와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성인이 되면서 맞게 되는 세속적인 문화들도 청년 MK들을 매일 선택의 길에 서게 한다. 입국 초기에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대중매체나 자유분방한 모임에 갑작스럽게 노출 될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순진한 MK들은 도덕성의 혼란을 경험하기도 한다.” (박순남 편저, 1999, 115). , 담배, 마약, 동성애, 다원주의,정치...와 함께 선교지에서 쌓은 풍부한 다문화적 지식에 비해 무지한 고국 문화” (Pollck & Reken 2005, 118)는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따라 청년 MK들을 포용과 분리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III. 환대의 이해

 

 환대는 그리스어로 호스피스(hospes)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손님,‘주인을 뜻하는 말이며 손님이나 주인 또는 낯선 이방인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환대는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하는 것처럼 낯선 이에게 따뜻함과 편안함을 주는 것이며 그들에게 기쁨과 힘과 용기를 주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정경호. 2010. 178)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기 원하는 것과 같은 모습과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받아들여주는 것을 환대라 할 수 있겠다. 시간, 공간, 물질, 심리, 영적인 것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폭넓게 이해하여야 한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이해하자면 데리다는 관용을 극복할 윤리적 이념으로환대라는 용어를 제안하며 이방인의 가치에 접근 하고 있는데,(자크 데리다,2004, 84) 환대하는 주인의 기쁨을 누리면서 동시에 이방인에 대한 불안과 강박을 두려워하며,‘무조건적인 환대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것의 제한적인 면과 한계를 지적한다. (위의책 103) 실천적인 환대에 대하여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 일꾼 운동의 주요 사업으로 열었던 환대의 집을 통해 그녀가 평생 동안 노숙자를 비롯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무료 급식소가 아닌 그들을 어떻게 손님으로 맞이하고, 먹을 것과 잠잘 곳을 대접하였는지 그 경이로운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충성은 우리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보고, 글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교의를 따르려고 애쓰는 하루하루의 삶입니다라며 교회와 함께하는 그녀의 방식을 말하고 있다. 그녀의 삶은 회심한 후 가톨릭신자가 되어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세상에 다가서고 어떻게 삶 속에서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환대를 실천했는지 알 수 있다.(로버트 콜스,2011,174)

 

 성경적 윤리의 영역에서 환대는 그 역할이 작지 않다. 성경의 훈계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미덕을 실천할 것을 권고했다. 이러한 관습은 유목민의 삶이 중심이었던 고대 근동 지방으로 올라가 창세기 18장 이하에서 아브라함이 마무레 상수리 나무아래 장막문 앞에 와 서신 여호와를 영접하여 초대하는지에서 볼 수 있다. 당시 손님을 환대하는 풍습은 죽음에서 목숨을 구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Bible,1996, 336) 지나가던 낯선 이방인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제공하는 것은 선을 베풂으로써 잠재적인 원수로부터 자신과 공동체를 보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바라는 행동이었다. 이러한 환대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한 아브라함의 청원으로 이어져 조카 롯의 가족을 구원하기까지 이어진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기대되는 것인데 히브리서 13:16절에 보면 오직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는 말씀에서 환대함을 우리가 드리는 예배 행위로 여기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환대는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주시는 책무 중 하나이다. 바울은 필요가 많았던 지도자의 일 들 중에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강조함을 볼 수 있다. (딤전 3:2, 1:8) 4)

 

 구약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환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볼 수 있다. (시편 39:12,11:13). 하나님은 소외된 이스라엘 백성을 은혜롭게 받아들이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애굽에서 구하여 광야에서 먹이시고 입히셨다. (16; 8:2-5) 이스라엘이 여호와로부터 사랑의 돌보심을 받은 것처럼 이스라엘도 소외된 자를 사랑하고 돌보아야 했다.(23:9, 19:33-34) 신약에서 보면 예수님은 그를 알아보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 세상에 영접 받지 못하는 자로 오셨다.(1:10-14). 예수님의 순회 사역은 그를 다른 사람들의 환대에 의존하게 했는데 (9:58; 10:38) 구약에서와같이 신약에서도 환대의 행위는 의로운 행동으로 포함된다. 우리는 사랑에 대한 다른 표현의 맥락에서 환대를 행하라는 명령을 발견할 수 있다. (12:9-21; 13:1-3; 벧전 4:8-11; 요삼 5:5-8 )

 

 이런 환대의 모습을 현대에서는 많이 찾아보기 어려워졌는데 그것은 사회의 형태가 변화함에도 있지만 데리다가 말하는 이방인에 대한 불안과 강박의 두려움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가 그 힘을 잃어버린 이유 중에는 환대의 부재도 부인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환대는 타인에게 베푸는 윤리적인 실천인데 이것을 성경적으로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랑은 윤리보다 더 높은 차원인데 철학에서 찾지 못한 환대를 우리는 교회의 성육신적 삶을 통해 드러나는 사랑에서 궁극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박연숙, 2017, 7)

 

IV. MK 사례를 통해서 본 환대

 

1. 가정폭력을 경험한 MK

 

 D 국에서 현지 학교를 다니던 A는 고2 여학생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대학생 오빠까지 4명의 가족이며 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하였고 캠프가 끝나갈 무렵 23일간 함께 지내게 되었다. 낯을 가리지 않고 유난히 밝은 모습이었는데 함께 지내는 동안 편하게 있는 모습을 넘어서 넘치는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조장으로 섬기던 리더의 조심스러운 연락을 받고 지켜본 결과 필자만 느끼는 것이 아닌 필자의 부부가 함께 찾아낼 수 있는 지나친 밝음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캠프 본부와 상의하며 조심스레 파송기관에 의뢰한 내용은 아버지의 가정폭력이었다. 이미 엄마와 오빠는 폭력 가운데 노출되어 있었으나 막내이고 딸인 A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가 오빠가 대학을 가며 집을 떠났고 방어막이 사라지자 엄마의 아픔을 알게 된 케이스였다. 밖에서는 밝은 모습을 가진 여학생이었으나 순간순간 드리워진 두려움과 어두움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닌 성령의 도우심이었고 필자의 부부가 함께 발견하고 눈을 마주친 것에서 느낀 동일한 감정은 주관적 해석이 아니라는 증거라 확신하였다 A의 경우 말로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꼭 필요한 섬세함의 요구가 있었다. 이것은 한, 두 번 봐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모든 상담의 예외 조건에 해당 되는 사항이었기에 A가 나눈 어려운 기도 제목을 리더가 공동체 안에서는 비밀을 지키며 알려왔고, 그것을 지도자 그룹에서 상의하여 단체에 보고하는 과정으로 이어졌지만 오랜 경험 가운데 리더의 알림 전에 찾아낼 수 있었던 이상기후였다. MK들을 오랜 시간 만나보면 낯섦에서 온 조용함과 우울감에서 오는 조용함의 차이, 즐거움에 들뜬 밝음과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는 꾸며 낸 밝음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관계하면서도 세심하게 관찰하여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경험이 가져오는 것이다. 또한 평범한 일상의 관계를 이어가며 과도하고 급격하게 거리를 좁히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에 많은 시간과 경험이 요구되는 일이다.

 

2. 확대 가족 경험을 하게 된 MK

 

  F 국의 국제 학교에 다니며 기숙사 생활을 했던 B는 고2 여학생이었다. B가 캐나다에 있는 대학을 갈 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낯선 곳에서 도움을 줄 2가정을 소개하였다. 우선 부모님이 건너 건너 아는 분을 통해 공항에 마중을 나가서 학교까지 데려다주셨지만 MK들의 특성상 잘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어려워하면서도 낯선 곳에 혼자 있어야 한다는 두려움은 표현하지 않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연결하는 2가정 모두에게 이러한 특성을 미리 알려주고 어떻게 도움을 주면 좋을지 몇 가지 조언을 하였다. B의 경우 예의를 많이 차리고 폐 끼치는 것을 어려워하여 도움을 줄 사람들의 연락에도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는데 미리 MK들의 특성과 조언을 들은 가정들은 적극적으로 미리 약속을 정하고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식탁의 교제를 풍성히 나누는 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B의 경우 필요한 것은 실생활의 도움이었다. 긴급한 일을 대비해 비빌 수 있는 언덕과 허기진 마음을 격려하며, 따뜻한 밥 한 끼로 외로움을 채워 줄 수 있는 경계를 허문 가정들의 연결로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 믿을 만한 공동체적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MK가 도움을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와 원하지 않는데 거절을 못 하는 것인지, 진짜로 원하는 필요가 무엇인지, 도움을 줄 가정의 형편과 가족 구성도 살펴봐야 하는 감각적이고 세밀한 것이다.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연결하여 소개하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 있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경우를 생각하여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건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3. 성도의 교제를 경험하게 된 MK

 

 G 국과 H 국에서 자란 C는 미국과 한국에서도 대학 생활을 하는 어려움을 겪은 지금은 직장에 다니는 성인 MK이다. C의 경우 부모님이 준비해 주신 집에 남동생 K와 살고 있었는데 필자가 목회하던 교회에 출석하게 조언하여 지속적인 관계를 가졌다. 교회 가족들과 구역 안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구역장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교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도록 관심을 기울였다. C와 남동생 K는 이미 20대 중반의 성인이었기에 생활적인 부분보다는 그들의 심리적인 부분과 영적인 부분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관계하였다. 명절이나 교회의 절기 행사, 기도모임 등에 참여하도록 격려하고, 집에 찾아가 만나면서 어려움이나 고민을 들어보고 관심을 기울 일 때 서로가 한 교회 안에서 연합되는 깊은 연결을 느낄 수 있었다. C의 경우 그들의 필요는 영적인 돌봄이었다. 선교지와 공부하는 나라가 여러 번 바뀜으로 입었던 마음의 상처가 깊이 있어 불면증과 우울증이 있었고, 동생 K는 그 과정에서 관계에 대처하는 어려움이 있었기에 계속 연락하여 안부를 묻고, 함께 밥을 먹고,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며 작은 도움을 요청함으로 소속감을 갖게 하였던 일들이 그들에게 심리와 영적인 돌봄으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위의 사례들에 언급된 MK들의 변화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로 재입국하는 MK들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어린 MK들도 비슷한 변화를 겪지만, 그들은 대부분이 부모와 함께하기 때문에 필요의 대부분을 부모님이 발견하고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인 된 MK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스스로 살아내야 하는 부담감과 함께 이미 너무 성숙한 것처럼 마음의 겉옷을 입기 쉽다. 가까이에서 이들의 필요를 보고 나 혼자인 듯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손 내밀어 줄 어른이 필요함을 여러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들의 필요를 우리가 다 채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먼저 부모의 책임이며 우리와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서는 것은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조심해야 한다. 다만 그들의 가까이에서 안전을 지켜보며 필요를 느낄 수 있다면 손을 내밀 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본다또 다른 예로 지금은 엄마가 된 T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학과 졸업을 비롯한 모든 기념일에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직장에 다니던 중 엄마의 소천으로 결혼과 출산까지 엄마의 부재를 느껴야만 했다. 사역에 바쁘셨던 부모님께 원망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에 상처는 가지고 있었던 T가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생겼다고 연락해 왔을 때 서슴없이 달려가 그 형제를 만나주었다. 그 의미는 단순한 소개의 인사가 아닌 T에게도 한국에 어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결혼을 약속하였지만, 교제 가운데도 어른이 뒤에 있다는 울타리가 되어 주는 의미였다.

 

V.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적 환대

 

 세상에서 생각하는 문턱을 없애시며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와 함께하셨고 세리, 죄인, 그리고 바리새인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셨다.(2:15; 14:1) 누가복음 19:1-10에서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그 집에서 먹고 거하시며 그 집에 구원을 주셨다. 마태복음 25:31-46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소외되고 헐벗은 궁핍한 사람과 동일하게 여기시며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대하는 마땅한 자세를 신자 공동체에 요구하신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나그네가 되었고(15:18-19; 베드로전서 1:1; 2:11) 앞으로 그렇게 나그네로 살아갈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주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13:3-5) 식사를 인도하시는 주인으로 봉사하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지탱해 주는 "식사" 자체가 되셨다.(14:12-26; 요한복음 6:30-40, 고전 10:16-17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Bible, 1996, 360) 우리는 이제 국내로 재입국하는 청년 MK들을 맞이하여야 하는데 나 개인이, 우리 가정이, 그리고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적 환대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물리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 필요로 나누어 생각해 보았다. 물리적인 필요는 말 그대로 실질적으로 필요한 물리적 부분이고, 정서적 필요와 사회적 필요는 자기 개인의 심리와 정서적인 부분과 사회 안에서 필요한 관계와 생활의 필요로 구분하였다. 영적인 필요는 예배와 말씀, 기도 생활의 영적인 필요를 어떻게 채울지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조심스레 제안한다.

 

1. 물리적 필요

 

 실 생활에 필요한 여러물건의 나눔이나 계절용품,긴 시간이 아니라도 잠시(군에서 나오는 휴가나 외박, 명절, 방학, 주말여행...) 머물 거처의 제공, 호스텔이나 자취하는 청년들을 위한 반찬 섬김, 병원이나 간단한 이사를 위한 차량 섬김 등이라 하겠다.

 

2. 정서적 필요

 

 외로움이나 고립감에 처할 수 있는 청년 MK 들과 만나주는 시간의 섬김을 제안하고 싶다. 차 한 잔으로 시작하여 식탁의 교제로 이어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하고,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모를 때나 긴급한 일이 있을 때 우선적으로 연락할 수 있도록 마음 한편을 내어주면 그들의 필요를 기민하게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명절이나 긴 방학 때 기숙사에서 나와 갈 곳을 방황하는 청년들도 있는데 그들에게는 머물 장소뿐 아니라 함께 할 가족의 부재도 있을 수 있다. 그 외로움에 집을 열어 다른 가족 안에서 그 가족만의 문화와 역사를 보며 MK들이 앞으로 만들어 갈 가정의 여러 모델을 보게 하는 것이고 가족의 의미를 넓혀가는 확대가족의 좋은 본이 될 것이다.

 

3. 사회적인 필요

 

 혼자 처음 해외여행을 떠난 대학생 새내기와 마찬가지로 이들이 사회 안에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주민센터나 공공 기관의 이용, 은행의 계좌 만들기와 재정 관리영역, 분리수거 하는 법, 아플 때 어느 병원을 이용하는지 등 학교에서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기술의 분야를 습득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처음길을 함께 다녀줄 섬김 또한 필요하다.

 

4. 영적인 필요

 

 교회에서 만나는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MK들도 교회의 성도이다. 보통의 경우 MK들을 교회에서 만나거나 부모 선교사님과의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데 많은 어른들이 MK들을 선교사처럼 볼 때가 많다. 하지만 그들은 어쩌면 교회 안의 평범한 청년들처럼 구원의 확신이 없거나 회심에 이르지 못했을 수 있다. 그들에게 과도한 영적 수준을 요구하여 교회의 주변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개인적으로, 소그룹 기도 모임과 성경공부, 예배에서 교제를 계속 이어가며 그들의 영적 필요를 살피고 돌보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함께 지어져 가기를 소원한다.

 

VI. 맺음말

 

 필자는 밥상 공동체란 말을 좋아한다. 한국인의 특성들 가운데 언제 밥 한 번 먹어야지라는 인사가 있다. 그 인사는 만남, 헤어짐, 어색한 사이의 미래적 인사, 진심의 마음에도 두루 사용되는 인사이다. 한국인들 사이의 밥 한 끼는 배고픔뿐 아니라 외로움과 관계까지 포용하는 폭넓은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식구(食口)-“한집에서 같이 살며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의 넓은 의미로 함께 밥을 먹는 사이는 관심과 애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친밀함의 훌륭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이번 주제를 다루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땅으로 돌아왔으나 이방인 된 듯 낯설어 하는 MK들을 향해 마음을 열고 집의 문턱을 낮춰 가족 가운데에서 식탁의 교제를 함께 나누는 환대였다. “손대접의 실천은 다른 이들에게 열려있고, 또한 다른 이들의 통찰과 필요와 도움에 열려 있고자 하는 공동체의 의지를 반영한다.”(크리스틴 폴, 2014, p231)는 글에서 환대에 대하여 교회 된 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를 볼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소외된 자들의 필요를 먼저 아시고, 먹이시며, 돌보셨다. 우리는 교회의 어른으로서 이 땅에 나그네 되어 돌아온 MK들을 성도로 맞이하여야 한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배우고, 기도로 깊이 교제하며, 예배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하여야 한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성도로 자라게 도와야 한다. 그동안 교회와 선교지에서 많은 MK들을 만나고 함께 밥을 먹으며 느꼈던 밥상의 의미는 어쩌면 MK들을 더 따뜻하게 손잡아 주고 싶었던 마음의 표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으로의 귀환을 두 팔 들어 환영해주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며 공부하고 있는 것을 물어봐 주고, 네트워크를 통해 선배와 친구를 연결해주고, 살 곳이 어디인지, 교회에서는 어려움이 없는지, 그렇게 소소한 생활을 나누는 것. 부모님과도 잘 소통하겠지만 부모의 부재 가운데 급할 때 손 내밀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주는 것이 낯선 곳에 이방인처럼 오는 MK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행하는 환대가 될 것이다.

 

<참고 문헌>

박연숙, 기독교적 환대에 기초한 호스피스 사역,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18년도 석사학위논문

정경호, “환대의 밥상, 환대의 신학 삶신학과 목회34(2010), 178-179

Coles, Robert.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박현주 역. 환대하는 삶. 서울: 낮은산

Derrida, Jacques. DE L’HOSPITALITE. 남수인 역. 환대에 대하여 .서울: 동문기

Elwell,Walter A edited.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Bible .Baker Books.  Baker Book House Company. 1996

Pollock, David C. and Reken, Ruth. The Third Culture Kids. 박주영 역. 3문화 아이들. 서울: 비즈앤비즈, 2005.